백승희 교수 (연암대학교 외식산업과)

음식 만드는 것을 가르치는 학과에서 근무한지도 어느 덧 10년이 넘었다.
맡은 과목이 한식조리이다 보니 다양한 종류의 우리 음식을 접하게 되고 만드는 음식도 집에서 먹는 음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개강을 하고 첫 시간에 새로운 의지로 가득 찬 눈을 반짝이며 다소 긴장한 얼굴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신입생들을 보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한국음식의 특징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간장, 된장이요’, 짜고 매워요‘, 라고 대답하는가 하면 ’오방색 고명을 써요‘라고 제법 전공에 대해 공부해 온 용어로 대답하는 학생도 있다. 그러면 모든 학생들에게 ’다 맞아요. 그런데 우리 음식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주식(主食)과 부식(副食)이 나누어져 있으며, 대표적인 주식은 밥이고 그 외에도 죽류, 면류 등 5가지이고 부식은 쉽게 말해 국을 포함한 반찬으로 대략 1500가지 정도 된다.’라고 대답해주면 의지에 가득 찬 눈들이 더욱 반짝인다. 빨리 만들어보고 싶어서...
2주 차 부터 실습실에 가면 전문 조리인의 복장을 하고 도구가방을 든 예비 셰프들이 날을 세운 칼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어서 빨리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먼저 그날 만드는 음식과 관련된 이론을 설명한 다 음 안전과 위생교육을 하고 냉장·냉동고, 가스레인지 사용법 등을 일러준다. 첫 실습수업에서 꼭 하는 말은 ‘우리 전공은 3D 업종으로 구정물에 손을 넣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우선 여러분은 살림하는 법을 배워야한다’고 강조한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지금은 여러분이 먹지만 나중에는 돈을 받고 팔아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양념 및 재료 관리부터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파와 마늘 다지는 법부터 시작해서 만드는 법을 먼저 보여준 다음 개인별로 원재료를 나누어주고 ‘시작’을 외치면 완성작을 위해 열심히 움직인다. 무생채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얇게 편(片 )썰기를 해야 하는데 칼날 30㎝의 전문가용 칼을 쥐었으니 본인의 의지대로 칼이 움직여질리 만무하다. 너무나 굵직하게 썰어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무쳐놓은 무생채를 보면 족발에 곁들인 무 무침이 생각나 갑자기 군침이 돌고, 다진 마늘과 생강은 흡사 견과류를 뿌려 놓은 것 같아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잠깐 방심한 사이에 시럽이 되직해져서 화전 위에 뿌려 놓으면 단단하게 굳어버려 접시를 거꾸로 들어도 떨어지지 않는 바람에 액자처럼 걸어도 되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이렇게 갈팡질팡하며 두 학기를 마치고 나면 그래도 제법 솜씨가 늘어 자격증도 따고 때로는 앞으로 불러내어 시범을 하라고 시키면 너무 좋아한다. 학우들도 능청스럽게 짓궂은 질문을 해가며 오히려 내가 할 때보다 집중을 잘한다.
방과 후의 동아리 활동은 더욱 다양하다. 미리 인터넷 검색이나 스터디 모임 등을 통해 창작 레시피를 만들고 샌드위치나 주먹밥 등을 만들어 팔아서 돈이 모이면 랍스터나 망고 등 수업시간에 다루어보기 어려운 비싼 재료들을 구입해서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기도 하고 봉사활동을 하거나 맛 집을 탐방한다.
이렇게 2년을 배운 후 더 많이 배우기 위해 편입을 하거나 유학을 가기도 하고 취업을 해서 열심히 직장생활에 매진하는 것을 보면 참 대견하고 기특하다. 요즘은 만학도들도 진학하여 제2의 인생을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기말고사 기간에 눈에 핏발이 서 있는 그분들을 보면 가슴이 찡하다. 그래도 이 학업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씀해주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자유학기제가 시행되면서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중·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진로체험을 신청하여 가끔 우리 학과에 수업을 받으러온다. 4시간 동안 2가지 정도의 음식을 만드는데, 수업을 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학생들의 수준을 모르니 이 정도면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메뉴를 짰다. 그러나 웬걸, 감자와 당근의 껍질을 못 벗기는 것은 당연하고 깻잎도 잘 썰지 못하였다. 물론 시작 전에 집에서 음식을 해본 사람 손들어 봐라 하고 말했을 때 거의 없었지만 그 정도일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어디가 손잡이인지 몰라 전기밥솥의 뚜껑을 열지 못하였다. 라면을 끓여 보았다는 학생이 있기도 하였지만 비빔국수를 만들기 위해 국수를 삶을 때의 장면은 정말 놀라왔다. 소면을 삶으려면 끓고 있는 물에 국수를 둥그렇게 펴서 넣어주어야 하는데 불이 무서워 접근을 못하니 냄비 밖으로 떨어져 나와 불에 타고 그나마 냄비에 들어간 국수는 끓어 넘쳐 불이 꺼지기 일쑤였다. 고기음식을 좋아한다고 했지만 갈비를 손질하거나 생선음식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아무리 건강에 좋다고 해도 나물이나 비빔밥, 잡채는 만들 수가 없었다. 궁리 끝에 미리 양념장도 다 만들어 놓고 떡갈비에 들어갈 양파도 다져놓고 신세대가 좋아하는 치즈 등을 이용한 음식을 생각하게 되었다. 떡갈비를 만들어서 일부는 먹고 하나는 채소와 함께 햄버거를 만들어 예쁘게 포장해서 학교에 돌아가 간식으로 먹으라고 했더니 기뻐하며 어떤 학생들은 친구에게 주겠다고 하였다. 먹고 난 그릇을 깨끗이 닦은 학생들에게 청소 점검을 하고 칭찬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나누어주었다.
중학생들은 정말 산만해서 내가 설명을 하고 시범을 보일 때 잘 참지 못하였다. 인솔해 오신 선생님들이 얼마나 힘드실지 깊이 공감하였지만 교실을 떠나 공부 이외의 활동을 할 거라는 생각에 얼마나 마음이 부풀어 있었을까? 본인이 만든 음식을 먹으며 만족해하던 그 얼굴이 떠오른다. 본인도 서툴지만 한 가지라도 더 알면 적극적으로 일러주려고 하였으며, 만든 음식을 서로 비교하며 선의의 경쟁을 하기도 하였고 창의력을 발휘해 치즈떡갈비를 하트모양으로 빚어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하였다. 또한 음식 만들기가 이렇게 어렵고 어머니의 음식이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된 하루였다고 설문지에 소감을 남긴 학생도 있었다.
어린 날을 기억해보면 식사를 준비하시는 어머니 곁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콩나물, 시금치를 다듬었고, 밥이 다 되었다고 말씀하시면 책을 읽다가도 부엌으로 나가 밥상을 차리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일하시는 어머니 어깨 너머로 전해지는 냄새로 음식의 종류를 알았고 음식을 배웠던 것 같다. 결혼해서 집들이도 혼자서 했다. 특별히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머니가 요리책이셨고 어머니의 음식이 레시피였다.
세계적인 교육열을 지닌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은 이제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거나 밥상을 차리지 않는다. 도와주려고 나오는 자녀들에게 오히려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손사래를 친다.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를 하기도 힘들어졌고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희미해졌다. 물론 그렇지 않은 가정도 많이 있을 것이다. 스마트폰의 장점을 빌면 오히려 음식 만들기가 더욱 쉬워졌는데도 말이다. 늘 끊임없이 공부, 공부하지만 모든 자녀들이 다 원하는 대학에 가기가 쉽지 않으며 창의력 형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한 조건 세 가지가 첫째 어머니의 정보력, 둘째 할아버지의 경제력, 셋째 아버지의 무관심이라니 요즘 유행하는 말로 어이상실이다.
긴 긴 겨울이 지나고 아직은 차게 느껴지지만 봄바람이 불고 있다. 주말에는 자녀들과 함께 온 가족이 재래시장에 가서 냉이, 달래, 쑥도 사고 새로 나온 맛있는 먹거리를 사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냉이 손질로 새카맣게 된 손톱 밑을 닦은 아이가 만든 냉이무침 한 접시에 온 가족이 행복한 미소를 짓는 저녁 밥상은 밀레의 만종만큼이나 평화롭지 않을까? 서툰 솜씨로 부엌은 말할 수 없이 어지러울 터이지만 잘 했다고 칭찬해주면 아마 자발적으로 설거지도 할 것 같다. 부엌은 엄마가 다 알아서 한다고, 너는 공부만 하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녀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부엌을 내어주는 그런 가정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