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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맛의 정체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보았다.

‘왜 소태 씹은 얼굴을 하고 있어?’

우리들은 흔히 힘들고 어렵다는 표현을 할 때 이런 말들을 한다. 이와 반대로 즐겁거나 로맨틱한 분위기는 달달하다고 말한다. 그럼 과연 쓴맛은 어렵고 힘든, 좋지 않은 맛일까?

사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 중에서도 쓴맛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아무리 입을 헹구어도 1~2시간은 족히 입 안의 쓴맛이 가시지 않을 정도라는 소태나무의 쓴 맛의 성분은 크와신(quassin)이라는 물질로 어머니들이 젖을 뗄 때 이 즙을 가슴에 발랐다고 하는데 위장을 튼튼하게 하는 약재나 살충제, 또는 염료로도 사용하며, 맥주의 쓴맛을 낼 때 호프 대신 이용하기도 한다.

원래 쓴맛은 한번 뿌리를 내리면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이 해충이나 주변의 동물 또는 자외선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만든 특별한 물질인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로, 인체 내 생리활성물질로 작용하여 암이나 만성질환 등의 질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브로콜리나 양배추, 케일, 콜리플라워, 배추 등 십자화과 식물의 항암효과는 유기황 계열의 화합물인 글루코시놀레이트(glucosinolate)에서 오는데 이는 십자화과 식물의 쌉싸름하고 매콤한, 톡 쏘는 맛의 원인이기도 하다. 쓴맛을 내는 폴리페놀 화합물로 녹차에 풍부한 카테킨(catechin)과 양파의 퀘르세틴(quercetin), 포도의 라스베라트롤(resveratrol), 와인의 탄닌(tannin), 콩의 이소플라본(isoflavones) 등도 강력한 항산화제로 활성산소를 중화시켜 세포 손상 및 노화를 막아준다.

한의학에서도 쓴맛은 심장과 소장을 이롭게 하며 아래로 끌어내리는 작용이 있어 봄이 되어 몸이 나른하고 입맛이 없을 때 쑥이나 고들빼기, 씀바귀로 만든 쌉싸름한 음식을 먹으면 춘곤증에 지친 눈꺼풀이 다소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몸 안에 있는 묵은 찌꺼기와 독소들을 배출한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인들은 사자의 이빨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부쳐진 Loewenzahn(민들레)의 어린잎을 샐러드로 먹는데 민들레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도 어린 순은 나물이나 국거리로 쓰고 뿌리로는 술을 담아 주로 간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민간요법으로 먹는다.

쑥은 단군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식물로 무기질과 비타민의 함량이 많으며 특히 비타민 A와 C가 많이 들어 있다. 어린잎으로는 국을 끓이고 단오에는 쑥 잎과 멥쌀가루를 반죽하여 절편을 만들어 먹으며 여름철에는 모기를 좇는 모깃불로 사용하였고 흰 털은 긁어서 인주의 재료로 사용하였다.

동의보감에 씀바귀는 성질이 차고 맛이 쓰지만 몸의 열기를 제거해 심신을 편하게 해준다고 하였으며, 냉이는 성질이 따뜻하고 맛이 좋아 피를 잘 돌게 해주며 간에 좋고 눈이 맑아진다고 하였다. 중국 송나라 때 채원정은 가정 형편이 어려웠지만 부지런히 학문을 연마하였고 서산이라는 곳에 들어가 냉이를 캐어 먹으며 정진한 결과 주자도 존경할 만한 학문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한다. 냉이는 중국과 일본에서도 즐겨 먹는 봄나물로 당나라 시대에는 양기를 보충하기 위해 만두와 춘권의 소로 냉이를 넣었다고 하며, 일본에서도 칠종채(七種菜)라고 하여 봄을 맞으며 먹던 일곱 가지 채소 중 하나가 냉이였다. 이처럼 한중일 삼국에서는 봄이 되면 제일 먼저 냉이를 먹으며 몸보신을 하고 봄맞이를 했던 것이다. 산과 들에 지천으로 널려있던 쓴맛 나는 쑥과, 민들레, 씀바귀, 그리고 냉이가 밥상의 소중한 먹거리이면서 우리 건강의 지킴이 역할을 톡톡히 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스팔트에 묻혀 쑥과 냉이, 달래는 다 사라지고 쑥버무리 떡이나 콩가루를 묻혀서 끓여 먹던 쑥국과, 다진 쑥을 고기와 함께 완자로 빚어 끓인 애탕은 이미 외국음식처럼 그 맛과 조리법이 잊혀진지 오래다. 모르는 음식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시원한 냉이된장국과 달래무침을 좋아하는 남편들은 손이 많이 가는 식재료 중 하나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시장 보는 아내들의 눈치를 볼 것이다.

제철 모르는 하우스의 채소들이 푸른 잔디 풀 위로 봄바람이 불어도 언덕 위로 다니며 고운 나물을 찾아야 할 처녀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가을이 되어 은행이 수북이 쌓여도 중금속 오염 때문에 아무도 은행을 털지 않는다.

독일 유학 시절 동네 언덕 위에서 참나물과 달래를 발견하고 유학생들에게 전화로 연락해서 함께 참나물을 뜯어 맛있는 비빔밥과 전을 해먹었던 기억을 더듬으며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너무 풍요롭고 먹을 것은 넘쳐나지만 상대적으로 환경은 망가져서 심심산골에서 채취한 것이 아니면 믿고 먹기가 힘들다. 늘 봄은 오는데 진정한 봄날의 낭만은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5포 세대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현재 우리 사회는 지독한 쓴맛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있다. 교육의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정겨웠던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가 사라지고 대학도 학령인구의 부족으로 무리한 구조조정에 시달리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또는 잃게 될 사람들은 원하지 않았던 쓴맛을 보게 되었다. 입안은 깔깔해지고 소태를 씹은 것 같다.

‘오싫사(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오이의 쓴맛을 1천배나 더 느끼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이의 쓴맛이 트라우마(trauma)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다름‘을 존중하지 않고 전체주의에 빠진 대중으로 전락해버린, 음식 패권주의의 한 예를 소개한 것이다. 음식 하나에도 민주주의를 부여해야 하거늘,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으로 인한 부작용을 기회로 삼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내치는 비겁한 자들에게 꼭 인생의 쓴맛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그들이 맛본 그 쓴맛이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다시는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부당하게 쓴맛을 강요하지 않는 진정한 민주 시민이 되도록 하고 싶다.

WEDDINGS

Describe what you offer here. add a few choice words and a stunning pic to tantalize your audience and leave them hungry for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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