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아무래도 다이어트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며칠 전 톡으로 날아온 아들의 문자다. 식사 시간 외에는 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업무를 하다 보니 입사했을 당시보다 체중이 많이 늘었다는 하소연에 더럭 겁이 났다. 180센티의 훤칠한 키에 한때는 관옥같이 잘 생겼다는 말을 들었던 아들인데.....아들을 키우면서 두 번째 받은 충격이었다.
첫 번째 충격을 받았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전공 지식을 발휘하여 식재료 선택도 신중하게 하고 번거롭지만 건강에 유익한 조리법으로 조미료 없이도 맛있게 조리하던 엄마에게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한 덕분에 체중에 대해서는 걱정을 하지 않았던 아들이, 군대에 다녀온 이후 이상한 식습관을 보이기 시작하였을 때였다. 제대 후 함께 지내면서 살펴보니 아들은 삼시세끼를 먹고도 잠들기 전에 꼭 야식을 하였다. 먹을 것이 마땅치 않을 때는 하다못해 우유에 콘플레이크라도 말아 먹어야 잠자리에 들었다. 가족들이 워낙 간식이나 야식을 즐기지 않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이 현상은 너무 쉽게 눈에 띄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콜라와 냉동만두는 구매하지 않고 햄과 소시지는 모르는 식품인 우리 집에서, 아들은 너무 자주 음료수와 주스류를 마시고 있었고 우리 집에는 절대 존재할 수 없었던 각종 양념류와 소스류, 가공 및 반가공, 냉동식품 등을 구입해서 엄마 몰래 먹고 있었다. 음식을 만들 때 기본으로 사용하는 양념류 외에는 조미료를 볼 수 없었던 우리 집 냉장고에 등장한, 양념장을 비롯한 돈** 소스, 데리** 소스는 물론 각종 스프레드, 케첩, 마요네즈 등은 정말 낯설기만 하였다. 필요하면 그런 소스나 양념을 직접 만들어 음식에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이 낯선 현상은 갈등의 요소가 되었다. 큰 마음먹고 물어보았다, 엄마가 하는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느냐고. 아들은 말했다. 군대에 다녀온 이후 집밥이 조금 입에 맞지 않는 것 같고 자기도 모르게 야식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보통 전역을 하고 나면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고 복학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체중이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마치 아기들의 젖살이 빠지듯이. 그러나 아들은 입맛과 식습관의 변화로 인해 체중 관리가 잘되지 않았다. 결심을 하고 냉장고를 정리한 후, 운동을 즐기기 보다는 관람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아들을 설득하여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시키고 계단 오르기 등도 함께 하면서 조금씩 정상 체중을 유지하게 되었고 정체불명의 입맛도 어느 덧 회복이 되어 집밥을 먹는 즐거움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올해 2월 졸업과 함께 취업을 한 아들이 분가를 하였고 가끔 쉬는 날 집에 다니러 올 때마다 체형이 달라지는 것이 심상치 않게 느껴져 걱정을 하고 있던 차에 두 번째 충격을 준 문자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신세대답게 주방에 들어가는 일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업무에 지친 아들에게 쌀만 씻으면 엄마표 반찬으로 먹을 수 있는 한 끼의 집밥도 힘이 들었나보다. 그런데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조리할까? 어디서 무슨 재료를 살까? 등을 생각해야 하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려웠을지 짐작이 간다. 배고픔을 면하고 생명 연장을 위한 ‘끼니’를 때우는 일은 집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했기 때문에 아들의 마음은 약해졌고 또 다시 가공식품의 유혹에 빠지게 되었겠지, 그리고 집에 오지 않고 쉬는 날은 모자라는 잠을 자기 바빴을 테니.....고개가 끄덕여지지만 가슴이 아프다.
질 높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은 당연히 해야 하고 무엇보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알아야 한다. 단기간의 다이어트 보다는 영양과 조리에 대한 영구적인 지식을 쌓아서 GI(Glycemic Index, 혈당지수)가 낮은 식품이 무엇인지도 이해하고 한 끼를 먹더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게 식단을 짤 수 있어야 하고 조리도 직접 할 줄 알아야 한다. 청년 또는 아버지 요리학교는 시청이나 각 대학 평생교육원의 필수 코스가 되어야 한다. 소통의 명약은 음식이라고 했으니 자녀와 남편이 만든 음식은 가화만사성의 지름길이 될 것이다.
수업시간에 숙장아찌를 만들면서 이 음식을 먹어보았거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짐작대로 아는 학생이 거의 없었고 다 만든 후에도 고기만 골라먹고 무와 오이. 표고버섯, 미나리 등은 다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래서 요즘은 아예 밥과 달걀부침, 그리고 숙장아찌를 넣고 약간의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어 비벼 먹게 한다. 그러면 하나도 버리지 않고 먹은 후 맛있다고 한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 인가?를 가르쳐주고 또 그것을 전수해야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을 위해 요리법을 기록해두어야겠다. 1670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을 남긴 안동 장씨도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을 이리 눈 어두운데 간신히 썼으니 이 뜻을 알아 이대로 시행하고.....’
모든 음식들은 점점 단맛과 매운 맛이 강해지고 있고 어느 조리사는 ‘구두도 기름에 튀기면 맛있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생크림 케이크와 마블링 풍부한 기름진 육류가 우리의 주위에 널려 있다. 김치와 나물, 우엉, 연근 등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해 먹을 엄두도 내지 않으면서 유산균과 변비약은 광고까지 해가며 팔고 있다. 삼색 파프리카와 호박, 당근을 먹으면 굳이 비타민제를 복용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음식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은 약으로도 치료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말이다.
100세 시대에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집밥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혼밥이 단순한 끼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글 쓰는 요리사 박찬일은 말했다. 먹어야 사는 인간에게 요리는 삶의 본질이라고.
아들이 보낸 문자이다.
“엄마가 보고 싶어요. 그리고 나에게는 정말 집밥이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