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계절이 뚜렷하고 농경 위주의 생활을 해온 우리나라에는 달마다 있는 명절 음식인 절식(節食)과 자연의 변화에 어울리는 계절음식인 시식(時食)을 먹는 풍습이 발달하였다. 대표적인 3대 명절 중 하나인 설날에는 새 옷을 입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 후 떡국을 먹으며 새해의 첫 날을 즐겼고 정월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묵은 나물, 그리고 귀밝이술을 마시며 부럼을 깨물었다. 또한 설날과 함께 지금도 큰 명절로 지내는 추석에는 햅쌀로 빚은 송편과 송이산적, 햇과일 등을 절식으로 먹었다. 이밖에도 봄이 시작됨을 알리는 입춘(立春)에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기분 좋은 글귀를 대문에 붙이고 입춘오신반(立春五辛盤)과 같은 매운 생채요리나 새콤한 탕평채 등을 먹으며 잠들었던 미각을 깨웠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삼짇날에는 화전을 먹으며 봄의 낭만을 만끽했고, 음력 5월 단오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수리취떡과 함께 색도 고운 앵두화채를 마셨다. 햇 밀을 수확하던 6월 유두에는 칼국수와 밀전병을, 삼복에는 더위를 이기고 지친 몸을 보양하기 위해 육개장과 삼계탕을 먹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 칠석(七月 七夕)에는 옷과 책을 볕에 쪼여 습기를 없애며 막걸리로 만든 증편과 복숭아화채를 즐겼다. 중국인들도 칠월 칠석을 사랑이 이루어지는 특별한 날로 여겨 결혼을 하는 커플이 많다고 하는데 대전의 견우직녀 축제에서도 50년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한 80세 이상의 금실 좋은 부부에게 백년해로 상을 수여하고 결혼 10년차 이상 부부 5쌍이 결혼식의 감동과 기쁨을 재현하는 리마인드 웨딩이벤트를 진행한다고 한다고 하니 슬픈 유래를 담은 명절을 아름답게 승화시켜 지방축제로 개발한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동지에는 붉은 팥죽을 먹으며 소박한 안도의 한숨을 쉬지 않았을까? 섣달그믐에는 비빔밥을 먹으며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일 년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한해의 마지막이자 또 새로운 한해를 기원하였다.
모든 국민들이 연일 방송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살충제 계란 관련 뉴스에 이어 소시지의 충격까지, 무얼 어떻게 먹어야할까를 심히 고민해야 하는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 TV에서 냉장고 광고를 보았다. 요리법까지 다 알려주기 때문에 장기를 두고 있는 장인에게 사위가 서투르지만 살갑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줄 수 있는, 아주 따뜻한 느낌을 주는 좋은 광고였다. 그러나 이렇게 첨단을 달리는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산해진미가 풍부한 밥상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이 헐벗은 느낌은 무엇일까?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한편으로는 즐길 수 있었던, 자연과 시간의 흐름에 순응했던 조상들의 식생활이 느리지만 지혜롭고 여유가 있어서 새삼스럽게 부러워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닐 것 같다.
어린 시절 친가와 외가는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모깃불 대신에 평화로운 모기장이 있었던 외가는 나에게는 천국 그 자체였다. 그래서 늘 울며 아버지를 졸라 한밤중에도 외가로 가곤 했었다. 단잠을 자고 일어나 재미있게 놀다가 암탉이 꼬끼오를 외치며 지붕 밑 처마에서 후두둑 내려올 때 얼른 달려가 짚으로 엮은 둥지에 손을 넣어보면 따뜻한 계란의 촉감이 느껴졌고 지금도 너무 너무 생생한 그 느낌을 기억하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얼른 꺼내어 갖다드리면 외할머니는 모아두었던 다른 것과 합쳐 계란찜을 해주셨다. 가마솥에 끓고 있는 밥 위에 얹어 밥물도 넘쳐 들어갔지만 적당히 부드럽고 신기하게도 간이 딱 맞았던 그 맛은 오랫동안 뇌리에 박혀 늘 외할머니를 그리워하게 했다. 이제는 그 맛도, 따뜻했던 계란도 추억의 상자 속에 담긴 보물이 되고 말았다.
오늘은 마침 우리 대학에서 생산한 초란이 나오는 날이다. 출근길에 판매장에 들려 집에서 먹을 계란과 함께 실습시간에 사용할 계란도 확보하고 나니 다소 안심이 된다.
힘이 들어도 너무 쉽고 편하게 함부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천천히 모두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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