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오늘은 2018년 1월 1일로 양력 설날(신정)이다.또 한해가 지나가고 새해를 맞아야 한다는 사실에도 왠지 마음은 담담하였다. 아직도 음력으로는 11월이고 가족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차례를 지내거나 세배를 드리지 않아서인지 눈썹이 하얗게 된다고 밤새 잠들지 못했던 어린 시절도, 일출을 보겠다고 먼 거리에 차를 타고 떠났던 일도 모두 미세먼지에 덮인 희미한 추억으로만 느껴졌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떡국을 먹으니 나이 한 살이 늘었다는 생각이 현실로 다가오며, 늘 나에게 강렬한 느낌으로 각인되어 있던 가마솥 떡국에 대한 기억을 떠 올리게 하였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시집에 설을 쇠러 내려갔을 때의 일이다.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저녁상을 물리자 시어머니께서는 경상도 사투리로 다라이라고 하는 커다란 스텐 통에 가득 담긴 흰떡을 내놓으셨다. 꾸덕꾸덕 말려놓은 긴 떡들은 한눈으로 보기에도 엄청난 양이었다. 날이 잘 선 칼을 들고 오신 시어머니는 조용히 떡을 썰기 시작하셨다. 마치 한석봉의 어머니처럼...그런데 그 모양은 내가 그동안 보아오던 타원형이 아니라 얇고 동그란 엽전모양이었다. 이상하게 여겨 여쭈어보니 그건 상놈의 떡이고 양반의 떡은 그렇게 썰어야한다고 하셨다. 순간 피식하고 웃음이 나왔지만 썰어도 썰어도 줄어들지 않는 떡가래 때문에 입가에 머금었던 웃음도 사라지고 어깨가 떨어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드디어 엄지와 검지 사이에는 커다란 물집이 보이기 시작했고 다음 날 아침에는 주먹이 쥐어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어진 떡국 고명을 만드는 시간이 돌아왔다. 김을 구어 잘게 부순 다음 비닐봉지에 담아두고 달걀은 거의 한 판을 깨어 노른자와 흰자로 분리한 다음 지단을 부쳐 손톱만한 크기의 마름모꼴로 썰었다. 지단을 부치는 일은 다소 전문성이 요구되므로 무조건 맏며느리인 나의 몫이 되었다. 나머지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고명인데 그건 어머니께서 이미 만들어놓으셨다. 하나는 집에서 만든 두부이고 나머지 하나는 육장이었다. 육장은 기름기를 제거한 소고기를 칼로 잘게 다진 후(기계로 갈지 않는다) 집간장과 진간장을 알맞은 비율로 섞어 장시간 졸인 다음 식혀서, 그래도 남아 있는 기름기를 제거한다. 물론 다른 여러 가지 조리법상의 요인도 있었겠지만 떡국의 참맛은 이 육장에 의해 거의 좌우된다는 것을 떡국을 다 먹은 후에 알 수 있었다.

설날 아침이 되면 정말 일찍 일어나 세배를 드리고 또 세배를 받고 덕담을 나눈 후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밥 대신 떡국이 차례상에 올라가므로 추석에 비해 다른 음식을 그리 많이 장만하지는 않지만 식구들과 손님들을 위한 떡국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커다란 가마솥에 불을 지펴 물을 끓인다. 특이한 것은 고기나 뼈를 끓인 육수가 아니라 맹물을 사용한다. 물이 팔팔 끓을 때 집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두부를 넣는다. 육장의 간이 다소 세기 때문에 간장을 많이 넣지는 않는다. 두부가 부드럽게 익으면 떡을 넣는다. 떡이 충분히 익으면 우선 큰 그릇에 퍼 담아 낸 후 각각의 그릇에 담고 지단과 김, 육장을 얹고 참기름 한 숟갈을 띄워 상에 올린다. 어릴 때 친정에서 먹던 진한 육수에 두부와 다진 고기로 만든, 일명 꾸미를 얹고 달걀을 풀고 김을 얹은 떡국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굉장히 깔끔하고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고급스러운 맛이다. 가마솥에 끓이니 한 번에 조리하는 양도 엄청나지만 이렇게 끓인 떡국은 남은 것을 잠시 두었다 먹어도 떡이 그다지 퍼지지 않고 꾸미와 섞여 있지 않기 때문에 국물도 탁하지 않다. 엄청난 양의 가래떡에 놀랐던 가슴과 떡을 썰 때의 고통은 맛있는 떡국과 함께 어느 덧 사라지고 며느리들은 서로 남은 육장을 챙겨가려고 한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는 속보이는 핑계를 대며...

떡국을 먹는 풍속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의 문헌인 『동국세시기』,·『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등에 정조차례와 세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음식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최남선(崔南善)이 쓴 『조선상식(朝鮮常識)』에도 천지만물이 새로 시작되는 신년에 조상에게 바쳤던 깨끗한 흰 떡으로 끓인 떡국을 음복(飮福)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쇠고기가 널리 보급되기 이전에는 다진 꿩고기를 맑게 끓여 육수로 사용하였다. 또한 끊어지지 않게 길게 늘여 만든 가래떡은 장수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동글납작한 ‘양반의 떡’은 엽전 모양을 본 딴 것으로 재복의 소원을 담았던 것이다. 중국도 춘절에 화폐 모양으로 빚은 만두를 먹으며 집안에 재물이 넘치기를 빌며, 프랑스와 그리스에서도 새해에 동전을 숨긴 케이크를 나누어 먹는 전통이 있는데, 케이크를 먹다가 동전을 씹는 사람은 한 해 동안 운수가 대통한다고 믿었으니 동서양의 풍속 모두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동일한 것 같다.

개성에서는 가늘게 빚은 흰 떡을 3㎝ 가량으로 썰어 가운데를 대나무 칼로 눌러 잘록한 누에고치 모양으로 만든 떡으로 끓인 조랭이 떡국을 먹는데, 홍선표(洪善杓)는 『조선요리학(朝鮮料理學)』에서 조선을 비틀어버리고 싶은 고려의 신심(臣心)에서 유래된 음식이라고 하였다. 충청도에서는 생떡국이라 하여 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떡국을 끓여먹기도 하며, 음력 9월 9일에는 가을 아욱을 넣은 다슬기생떡국을 끓여 먹으면 어지럼증이 없어진다고 해서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8월 18일은 쌀 day, 11월 11일은 가래떡 day이지만 비만의 주범이 탄수화물인 것처럼 인식되어 쌀 소비량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 손두부를 만들고 가마솥에 끓인 떡국의 맛이나 어깨가 빠져라 손으로 다져 만든 육장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아이들도 다 컸으니 언제까지 시어머니께서 만든 육장을 챙겨 올 핑계도 댈 수 없을 터이니, 그 맛을 흉내라도 내도록 부지런히 노력해보자. 쉽게 쉽게 기계가 썰어주는 길쭉길쭉한 떡, 한 입에 쏙 들어가지 않아 입 벌림이 흉해 양반이 못될 것 같은 모습으로 먹지 말고 손으로 동글납작하게 조신한 마음으로 썰어보자. 온 가족이 함께,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 모여 맛있게 즐겁게 떡국을 먹다 보면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복도 재물도 함께 오겠지...

2018년에는 모두 모두 건강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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