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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도 돈 많이 벌고 건강하고 시집, 장가가고 좋은 곳에 취직해라‘

‘아들 딸 많이 낳고...’

듣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덕담을 나누며 세배를 하고 떡국을 먹던 설날이 가고 올해의 두 번째 달도 벌써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곧 다가올 음력 정월 보름(양력 3월 2일)은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의 중요한 절기 중 하나로, 한해 농사의 풍요와 안정을 기원하는 날이다.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까지는 미처 찾아뵙지 못한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마을 곳곳에서는 윷놀이를 하며 흥겨운 분위기를 이어 나간다.

정월 대보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1 기이(紀異) 편으로, 신라의 21대 왕인 소지왕(炤知王)이 정월 보름을 맞아 경주 남산의 천천정(天泉亭)에서 산책을 하던 중 쥐가 왕에게 다가와 사람처럼 소지왕에게 까마귀를 좇아가보라고 말을 하였다. 까마귀를 따라가니 한 노인이 나타나 왕에게 올릴 글을 바쳤는데, 이 봉투를 열어 보면 두 사람이 죽고, 안 열어보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라고 씌어 있었다. 한 신하가 소지왕에게 두 사람은 서민이요 한 사람은 소지왕을 뜻하니 열어보라고 권했다. 소지왕이 글을 열어보자 거문고 통을 쏘라는 뜻의 사금갑(射琴匣)이 적혀 있어 대궐로 돌아와 거문고 통을 활로 쏘니, 그 안에 숨어 있던 왕비와 승려가 간음을 하고 반역을 꾀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소지왕은 이를 알린 까마귀에게 보답하기 위해 정월 보름날을 오기일(烏忌日)이라 명명하고, 해마다 약밥을 지어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전한다.

대보름에는 약밥뿐 만 아니라 오곡밥을 지어 먹는데 경기도와 충청도에서는 찹쌀에 팥과 콩, 차조, 수수를 넣었고 다른 지역에서는 찹쌀 대신 멥쌀이나 보리쌀을 사용하였다. 찹쌀은 소화기관의 부담을 줄여서 노약자가 음식을 섭취하는 데 도움을주며 칼륨이 풍부한 팥은 부기를 빼고 노폐물을 배출하는 효과가 있다. 비타민과 철분, 이소플라본이 풍부한 콩은 우울증과 골다공증, 갱년기 증상을 완화시켜주고 심장병과 고혈압의 위험을 낮춘다. 차조는 소변 배출을 돕고 무기질이 풍부하며, 수수의 타닌과 페놀은 항산화에 도움을 주고 방광의 면역기능을 높인다. 영양학적인 면에서 하얀 쌀밥보다는 매우 우수한 음식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기록된 진채(陣菜), 즉 묵은 나물은 박과 버섯, 콩, 순무, 무 잎, 오이꼭지, 가지껍질 등 각종 채소를 말려둔 것으로 정월 대보름에 삶아서 오곡밥과 함께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였다. 보통 9가지 또는 10가지의 나물을 준비하는데, 산에서 채취하는 취나물, 고추나물, 삿갓나물을 비롯하여 시래기, 무청, 호박잎 등을 말린 것과 함께 바닷가 지역에서는 해초를 사용하기도 한다. 복쌈이라고 하여 김이나 취의 잎사귀로 오곡밥을 싸서 먹는데 지금은 각종 채소도 풍부하고 건조기와 같은 조리 도구도 발달하여 일 년 내내 식이섬유와 무기질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으나 현대인의 건강을 체크하는 관점에서 볼 때 선견 지명이 뛰어난, 매우 지혜로운 식생활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부럼 깨물기는 작절(嚼癤)이라 하여 부스럼을 깨문다는 뜻으로 호두, 땅콩, 잣과 같이 껍질이 단단한 견과류를 깨문다. 여러 번 깨무는 것보다 단번에 큰 소리가 나게 깨무는 것이 좋으며 첫 번째 깨문 것은 마당에 버리면서 일 년 동안 무사태평하고 만사가 뜻대로 되며 부스럼이 나지 말라고 기원하는데 이렇게 하면 일 년 동안 부스럼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이가 단단해진다는 속신이 있다. 실제로 견과류에 풍부한 불포화지방산이 피부에 영양을 공급하고 소홀히 하기 쉬운 치아 건강을 점검하는 효과가 있으니 일석이조의 풍습이다. 또한 귀밝이술(이명주, 耳明酒)이라 하여 데우지 않은 찬 술을 마시는데, 일 년 내내 귓병에 걸리지 않고 귀가 잘 들리며 좋은 소식만 듣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대보름날 밤에는 뒷동산에 올라가 달맞이를 하며 소원 성취와 풍년을 기원하였는데 달에 대한 믿음이 매우 강했던 조상들에게 둥글게 가득 찬 보름달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었다.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를 보면 초저녁에 횃불을 들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하는 것을 영월(迎月)이라 하며 달을 먼저 보는 사람이 길하다고 하였다. 또 지푸라기로 달걀꾸러미를 엮듯 달집을 만들어 밤새 태우며 놀았는데 달집이 훨훨 타면 집안이 평안하고 마을이 태평하고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여자들은 소원을 적은 종이나 입고 있는 새 옷의 동정을 떼어 함께 태우면서 자신의 액이 없어지기를 빌었다고 한다. 전라도에서는 대나무를 태워 그 터지는 소리로 잡귀와 액을 쫓기도 하였다. 대보름 전날 밤에는 기다란 막대기나 깡통에 불을 담아 줄에 매달아 빙빙 돌리며 놀았는데 이를 쥐불놀이라고 하였다. 쥐불은 논과 밭의 해충을 태워 없애주고 재가 날려서 거름이 되는 효과가 있었다. 이제는 추억 속에 자리 잡은 어린 날의 판타지이지만...

더위팔기는 한 해의 더위를 모면해보자는 생각에서 비롯된 속신으로, 될 수 있으면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서 이웃 친구를 찾아가 이름을 부르며 내 더위 사가라고 외친다. 그래서 대보름날 아침에는 친구가 이름을 불러도 냉큼 대답하지 않으며, 때로는 미리 내 더위를 사라고 응수한다. 그러면 더위를 팔려고 했던 사람이 오히려 더위를 먹게 된다. 더위는 한 번 팔면 되지만 장난꾸러기들은 여러 사람에게 더위를 팔수록 좋다고 이집 저집 찾아다니며 친구들을 골려주기도 하였다. 사람뿐만 아니라 심지어 가축들의 더위를 막을 예방책으로 소나 돼지의 목에 왼새끼를 걸어주거나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의 가지를 꺾어 둥글게 만들어 목에 걸어준다. 왼새끼를 목에 걸어주는 것은 고대 중국의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며, 동쪽으로 뻗은 복숭아나무의 가지는 악귀를 쫓는 민속적 주술로 많이 쓰여서 아마도 더위를 쫓는 효과도 볼 수 있으리라 여겼던 것이 아닐까? 특히 재미있는 풍속으로는 부잣집 흙을 몰래 훔쳐다 자기 집 부뚜막에 발라 복을 비는 복토훔치기와 대보름날 새벽에 가장 먼저 용알이 떠 있다고 생각되는 우물물을 길어오면 그해 운이 좋다고 믿었던 용알뜨기이다.

정월 대보름에는 피해가 될 것을 미리 경계하는 금기도 많았는데, 찬물을 먹으면 여름 내내 더위를 먹으며, 논둑이 터진다고 생각했고 비린 생선을 먹으면 여름에 파리가 준동하고 몸에는 부스럼이 생긴다고 하였으며 까마귀에게는 밥을 주지만, 집에서 기르는 개에게는 밥을 주지 않았다. 개에게 밥을 주면 개가 여름 내내 잠을 많이 자며 개에게 파리가 많이 달려든다고 보았다. 칼질을 하면 상서롭지 않다고 보아 보름날에는 칼질을 하지 않았으며, 집에 키 작은 사람이나 아이가 가장 먼저 출입하는 것을 삼갔는데, 만일 그럴 경우에는 농작물이 잘 안자란다고 생각했다. 아침에는 마당도 쓸지 않았는데, 마당을 쓸면 한 해 복이 나간다고 여겼고, 오후에 빗자루질을 할 때에도 바깥쪽이 아니라 안쪽을 향하도록 하였다고 하니 미신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새해이니 매사에 조심스럽게 행동하려고 했던 마음가짐이 느껴진다.

아침에 인터넷을 보니 로봇성악가라는 검색어가 떴다. 얼마 전 로봇 바리스타가 커피를 타고 로봇이 한복을 입고 강연을 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온 기사가 떠올랐다.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더위를 팔고 달집을 태우고 부잣집의 흙을 훔쳐 오고 용알을 떴는데, 보름날에는 찬물도 안마시고 칼질도 하지 않으며 조신하게 안쪽으로 빗자루질도 해야 하는데, 부럼을 깨물며 아홉 가지 묵은 나물도 무치고 오곡밥도 지어야 하는데...

정월 대보름 밤에 달을 향해 꼭 소원을 빌어야지.

아직은 좀 더 추억을 간직하며 아날로그 감성으로 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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