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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무늬도 선명한 예비군복 차림, 갓 예편한 향토예비군들 바다로 산으로 피서 가네.’ 수박의 겉껍질을 얼룩덜룩한 예비군복에 비유한 박원자 시인의 위트가 넘치는 ‘수박’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박과에 속하며 남아프리카의 건조한 초원지대가 원산지인 수박은 4천 년 전부터 재배되어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원산지에서 유럽과 남․북아메리카로, 그리고 동양에는 터키인에 의해 전해졌다. 우리나라에 수박이 언제 들어왔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자료에 의하면, 광해군 3년인 1611년에 허균이 쓴 《도문대작(屠門大嚼)》에서 고려를 배신하고 몽고에 귀화하여 고려인을 괴롭힌 홍다구(洪茶丘)가 처음으로 개성에 수박을 심었다고 하며, 1509년에 완성된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에 수박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인 고려시대부터 재배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 22권에 주방(酒房)을 맡고 있던 환관 한문직(韓文直)이 수박을 도둑질하여 곤장 100대를 맞고 영해로 귀양을 갔으며, 세종 12년에는 소근동이라는 궁궐 창고를 관리하는 내시가 역시 수박을 도둑질하여 곤장 80대를 맞았다고 한다. 그 당시 수박 한 통이 쌀 반 가마니 가격이었다고 하니 조선시대의 수박은 사치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인 1926년 개벽사에서 취미와 가벼운 읽을거리를 위하여 창간한 월간잡지인 《별건곤((別乾坤)》 8호의 〈녀름의 과물이야기, 녀름상식〉을 보면 ‘지금은 세계가 교통이 편하게 된 고로 우리 곳에서 나는 것도 먹을 뿐 아니라 남양(南洋)이나 그 외에 어느 곳에 것이던지 쟈유로 슈입하게 되여서 엄동설한에도 '빠나나'나 '수박' 가튼 것을 먹게 되엿다. 그러나 언제든지 그 계절(季節)에 나는 것을 그 계절에 먹어야 해가 업고 영양상, 생리상에 지극히 조흔 것이다.’라며 제철 과일을 권장하고 있는 글귀를 볼 수 있다.

수박은 한자로 서과(西瓜)라고 하는데 한방에서 갈증을 없애주고 해독하는 효능과 간염, 담낭염, 신염(腎炎)과 황달을 치료해주고 혈압을 내리는 작용이 있다. 『동의보감』에도 ‘번갈과 더위 독을 없애고 속을 시원하게하며 기를 내리고 오줌이 잘 나가게 하고, 혈리(血痢, 혈액이 섞인 설사를 일으키는 병)와 입안이 헌 것을 치료 한다’고 하였다. 영양학적으로 보면 수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과당과 포도당은 무더운 계절에 갈증을 풀어주고 피로회복에 도움을 주며, 요소 사이클의 중간대사물질인 시트룰린(citrulline)이라는 특수 아미노산이 체내 요소합성을 돕기 때문에 이뇨효과가 커서 신장기능이 좋지 않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또한 시트룰린이 운동 효과를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도 있는데 스페인의 카르타제나 테크니컬 대학의 연구팀이 세 그룹의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운동 한 시간 전에 천연의 수박 즙과 아미노산을 첨가하여 가공한 수박주스, 그리고 위약(僞藥, placebo)을 나누어 주고 운동을 한 뒤 체크해보니, 수박 즙과 수박주스를 마신 그룹에서 심장박동의 회복과 근육 염증 완화 효과가 나타났는데, 특히 천연 수박 즙의 체내 소화흡수율이 더 높았다고 한다. 수박의 풍부한 ‘L-시트룰린’을 매일 섭취하면 혈압을 낮춰주고 뇌졸중이나 심장질환을 예방해주며 질산화합물의 작용을 돕고 뼈 근육에 공급되는 포도당을 늘리는 역할을 하므로 운동선수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또한 100g당 30㎉ 정도로 열량이 매우 낮아서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가 높다. 주로 생과일을 그대로 먹으며, 중국에서는 씨를 볶아서 스낵으로 먹기도 하는데, 씨에는 당질을 비롯하여 단백질과 지방, 비타민 B군이 다량 들어 있다.

수박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씨 없는 수박이다. 일반 수박의 염색체는 22개인데 이중 절반인 11개는 암꽃이 되고, 나머지 절반은 꽃가루가 되는데, 일반 수박에 콜히친을 묻히면 염색체가 나누어지지 않고 22개 염색체를 가진 암꽃을 피우게 된다. 이 꽃에 11개 염색체를 가진 정상 꽃가루를 묻혀 수박을 얻은 다음 여기서 얻은 씨앗을 심으면 염색체가 33개인 씨 없는 수박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기술적인 문제와 수확기가 늦는 점, 기형 과일의 발생 등의 문제가 있어 크게 이용되지는 않는다. 씨 없는 수박이 더 달다는 속설이 있지만 수박의 당도는 성장 속도와 주변 환경에 의해 결정되므로 과학적으로는 틀린 말이다.

씨 없는 수박하면 많은 사람들이 세계적인 육종학자인 우장춘 박사를 떠올리지만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개발한 과학자는 일본 교토대의 기하라 히토시(きはらひとし, 1893~1986) 박사다.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씨 없는 수박을 만드는 기초 원리를 규명하였으며, 이 이론은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기하라 히토시 박사도 이 이론을 바탕으로 씨 없는 수박을 만들었다고 증언하였다.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우장춘 박사는 1950년 일본에서 귀국하였으나 그 당시 우리나라 정세가 불안하여 일본인 아내와 2남 4녀의 자식을 모두 일본에 두고 와야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명성황후의 암살에 가담한 조선군 대대장 우범선(禹範善)이 바로 우장춘 박사의 부친이라는 사실을 대하며 비극적인 역사 앞에서 우리 모두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최근 한국과 일본의 외교관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이 매우 불안하다. 단순히 일본 맥주를 안마시고 렉서스를 안타고 유니클로 옷을 안 입고 다이소 물품을 안사는 것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구한말 윤치호(尹致昊) 선생은 한국인은 10%의 이성과 90%의 감성으로 살아간다고 말했다.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망가지는 것은 미래이다.

종은 달라도 같은 속의 식물을 교배하여 전혀 새로운 식물을 만들었던 ‘우장춘 트라이앵글’을 오늘날 굳건한 한․미․일 동맹에 적용할 수는 없을까? 씨 없는 수박처럼 비우고 버려서 새로운 결실을 맺는 외교 전략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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