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대학교 외식산업과
백 승희 교수
아파트 담장에 노란 개나리가 얼굴을 내미는가 싶더니, 고고한 자태의 목련이 우유 빛 꽃잎을 펼치고, 벚꽃의 화사함이 주변을 환한 빛으로 밝혀주고 있다.
등산길에 만나는 분홍 빛 진달래의 수줍은 미소는 코로나 블루로 우울했던 우리를 토닥이는, 자연이 주는 진심어린 위안의 손길처럼 느껴진다.
얼었던 땅을 뚫고 나오는 식물들의 강인함처럼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지켜가며 좀 더 힘을 내어보자.
미나리는 봄을 대표하는 건강식품으로 전국의 냇가와 습지에 흔하게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대만,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등 아시아 대륙에 널리 분포하며 전 세계에 약 2,600여 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80여 종이 분포하고 있다.
머리를 맑게 하며 주독을 제거할 뿐 아니라 장을 잘 통하게 하고 황달과 부인병, 음주 후의 두통이나 구토에 효과
봄에는 겨우 내 몸속에 쌓였던 독소와 노폐물을 많이 배출해내기 위해 특별히 간(肝이) 활발하게 활동하여야 한다.
미나리는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 그리고 섬유질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혈액의 산성화를 막아준다.
미나리의 해독과 혈액의 정화 작용은 간 기능을 향상시켜 피로회복을 도우며, 특히 요즘처럼 황사가 잦은 경우 중금속 배출에도 도움을 준다.
미나리철인 요즘 농가의 비닐하우스에서, 구운 삼겹살에 생 미나리를 둘둘 말아 먹는 청도의 한재 미나리와 대구 팔공산의 미나리가 많이 소개되고 있다.
“아무리 맛있는 남원 미나리라도 여름 것은 먹을 것이 못 된다”는 말처럼 여름 미나리에는 치쿠톡신(Cicutoxin이라는 독소가 있어 구토와 현기증, 경련 등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조심하는 것이 좋다.
줄기와 잎의 독특한 향기와 풍미는 입맛 없는 봄철 환절기에 식욕을 되살리기 좋으며, 특히 비타민B군이 풍부하여 춘곤증을 없애는 데에도 좋다.
동의보감에 미나리는 머리를 맑게 하며 주독을 제거할 뿐 아니라 장을 잘 통하게 하고 황달과 부인병, 음주 후의 두통이나 구토에 효과가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나리의 식용 기록을 살펴보면 『고려사(高麗史)』의 열전반역임연조(列傳反逆林衍條)에 미나리 밭을 뜻하는 근전(芹田)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이미 미나리가 식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허균(許筠)의 『도문대작(屠門大嚼)』에도 미나리나물이 기록되어 있다.
다산 정약용(丁若鏞)도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제5권에서 자신의 텃밭에 직접 키우고 싶은 채소 중의 하나로 미나리를 꼽았다.
배추가 널리 보급되기 전인 조선 초기에 배추김치를 대신했던 것도 미나리김치였다.
전라도와 경상도 지방에서 즐겨 먹었던 대표적인 봄김치 중 미나리김치는 특히 강진 해남 윤씨 가문의 내림 김치로 알려져 있다.
끓인 소금물로 미나리의 숨을 죽이고 찬물에 씻은 후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려 만드는데, 이렇게 하면 미나리 특유의 풋내가 없어지고 거머리도 떨어진다고 한다.
3월에 나는 부드러운 미나리뿐만 아니라 6〜7월에 나는 뻣뻣한 야생의 불미나리로도 김치를 담으며, 2~3일 정도 발효시키면 먹기 좋으므로 오래 전부터 무더운 여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해 미나리김치를 자주 먹었다고 한다.
청도의 한재, 남원, 그리고 왕십리의 미나리가 유명
요즘은 청도의 한재 미나리가 유명하지만 남원의 미나리, 그리고 왕십리의 미나리가 많이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박지원의 연암집(燕巖集)에도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왕십리 주변은 미나리 밭으로 유명하였으며, 서울시 서대문구 미근동(渼芹洞)도 미나리 밭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1884년 일본에서 발간된 한국어사전 교린수지(交隣須知)에 미나리(芹) 항목이 있는데, 편육을 비롯한 여러 가지 재료를 살짝 데친 미나리로 말아 초고초장에 찍어 먹는 미나리강회가 좋다는 한글 예문이 붙어 있다.
1966년 10월 6일자 경향신문에도 “봄이 되면 살이 오르는 미나리로 만든 미나리강회를 초고추장에 꾹 찍어먹으면 이건 봄을 먹는 겁니다.”라고 소개하였다.
“처갓집 세배는 미나리강회 먹을 때나 간다.”는 속담의 핵심도 봄 미나리가 그만큼 맛있다는 뜻이다.
한편 조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 주변에도 유생들이 먹을 미나리를 많이 재배하였으므로 성균관을 미나리 궁이라는 뜻의 근궁(芹宮)으로 부르기도 하였는데, 이는 미나리의 상징성 때문이다.
사대부들에게 미나리는 충성과 정성의 표상이었고 학문의 상징이었다.
조선시대에 생원 진사 시험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것을 ‘미나리를 뜯는다’는 뜻의 채근(采芹)이라고 하였으며, 이 말은 훌륭한 인재를 발굴해 키운다는 의미로 쓰였다.
미나리는 벌레와 질병에 저항력이 강하고 생명력이 끈질기며 물을 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습지의 수질정화용으로도 심는다.
무논과 비슷한 습지에서 미나리를 기르는 미나리꽝은 지금의 하수처리장 같은 역할도 겸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하천이 큰 물길로 이어지기 전, 오폐수가 미나리꽝을 거쳐 가면서 정화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미나리는 기계화가 안 되는 채소작물이므로 아직도 사람이 장화를 신고 미나리꽝에 들어가 일일이 심고 베어야 한다.
자녀 학대의 뉴스가 연일 TV를 장식하고 있는 요즘, 미나리를 키우는 일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미나리의 꽃말이 성의와 고결
봄비가 한 두 차례 지나가면서 주변은 점점 더 푸르러지고 있다.
연초록의 버드나무 잎은 꽃처럼 아름답다.
오늘은 데친 미나리로 아름답고 향기로운 미나리강회를 만들었다.
습지에서 자란 것이라 깨끗이 다듬고 여러 번 물을 갈아가며 정성껏 씻었다.
자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를 정화시킬 수 있는 훌륭한 인재로 성장해주기를 바라며 집집마다 미나리꽝을 만들었던 우리 선조들은 일찍이 미나리의 꽃말이 성의와 고결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미나리의 향기를 입 안 가득 느끼며 내가 먹는 이 한단의 미나리를 위해 수십 번 허리를 굽히셨을 분들을 생각해본다.
오후에는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미나리를 보러 나가야겠다.
왠지 벌써부터 감동이 느껴진다.